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문단 편집) ==== 그것은 [[근대]]의 산물이다 ==== 이제 다시 여성혐오로 되돌아가자. 정신과 전문의이자 작가인 사이토 다마키(斎藤環)[* 흔히 알려진 "[[히키코모리]]" 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제안한 인물로 더 유명하다.]를 비롯하여, 간혹 여성혐오의 심각성을 강조하려는 어떤 사람들은 여성혐오가 인류 역사에서 내내, 혹은 (그보다 좀 더 흔하게는) 농경 사회가 시작된 이래로 내내 만연해 왔던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여기에 정면으로 비판의 날을 세운다. '''여성혐오는 근대에 와서야 새롭게 확립된 섹슈얼리티의 '상식' 이자 사회적 질서라는 것.''' 전근대 사회에도 여성혐오의 징후가 없었던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것이 상식이 되고 질서가 되고 제도화되는 과정에는 소위 "개화" 내지 "근대화" 라는 이름의 그럴싸한 명분이 있었으며, 그나마도 그 과정에서 전근대의 성생활에 비하면 대단히 열화된 양상으로 확립되었다고 한다. 즉 저자는 여성혐오가 우리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질서라고 말하지만, 그 역사는 의외로 대단히 짧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는 여성들의 여성혐오 양상인 '''자기혐오'''가 어떻게 여성들에게 내면화되는지를 설명하기에 적절하다. 저자가 [[미셸 푸코]](M.Foucault)의 《성의 역사》 를 읽게 된 계기로 일본 풍속사와 민속 사료들을 검토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는데, 전근대 일본 사회에서 오늘날 통용되던 성애의 상식, 즉 [[이성애]]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니 [[동성애]]보다 더 우월하다거나, 부부 간의 성관계는 [[혼외정사]]보다 더 도덕적이라거나, 성관계는 내밀한 프라이버시에 속하므로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가져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 자체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이성애규범성|이성애중심주의적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고, 혼외정사로 아이가 생겼을 때에는 간단히 양자로 들였으며, 딱히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섹슈얼리티를 국한시키지 않고 야외를 포함한 다양한 공간에서 성을 탐닉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옛날에는 마을에서 신혼부부가 첫날밤을 보낸다고 하면 온 동네 남자아이들이 몰려가서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지켜봤다거나, 스승님이 아내와 운우지정을 나누는 모습을 들어 이 체위는 유교적으로 좋다, 저 테크닉은 나쁘다 말하며 제자들끼리 이러쿵저러쿵 했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온다. 당시에는 성관계가 남에게 보일 것을 어느 정도 전제하고 있었고, 청소년들에게는 그것이 성교육이었다는 것. 더 나아가면 당시에는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이라고 성적인 것에 대해 눈을 가려주거나 하는 것도 없었을 수 있다.] 에도 시절의 문헌들과 춘화들(…), 각종 사료들을 모아 볼 때, 당시 사람들이 극찬하던 섹스는 부부 간의 결합이 아니라 유곽에서 통인들을 섭렵하던 유녀의 프로페셔널한(…) 테크닉에 있었고, 마을 공동체에서 [[영혼결혼식|영혼 결혼식]]을 거행할 정도로 결혼의 목적이 자손 재생산이라는 인식이 희박했으며, 그 당시에는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남편이 자신의 행위를 "[[사랑]]해서 그랬어" 라고 정당화하는 사례도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 사회는 개인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조직화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자손 재생산이 가능한 이성애 남녀 간의 결혼에 '''"뒤늦게"''' 정통성이 부여되고 특권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일본 사회가 개화기에 들어 급속히 근대화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근대 일본의 가족 구성은 에토 준(江藤淳)이 선명하게 묘사했던 것처럼 "비참한 아버지, 답답한 어머니, 한심한 아들, 신경질적인 딸" 로 대변되었다.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하면서, 아들이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어지는 순간 아버지의 모습은 지배적이고 위풍당당한 가장이 아니라 위축되고 부끄러워하는 가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 같은 관용적인 표현들이 있는데, 이는 고도 산업화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문헌들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 간 관계의 변화는 가장 직접적으로는 가정 내의 여성들에게 닥치게 되었다.''' 가장 크게 위협을 받은 관계는 다름아닌 '''모녀관계'''인데, 아버지의 '비참함' 에 답답해하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딸은 자신이 여성으로서 아버지의 사회적 성취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현실 속에 불만스러워하며 '신경질을 내는' 위치에 선다. 어머니의 무력감과 공허함은 딸의 무력감과 공허함이 된다. 그런 딸들을 향해 어머니들은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소망을 대신 이루어 주기를 바라면서, 딸을 향한 자신의 이기적인 아집과 집착을 애정, 관심, 사랑, 자기희생 등으로 포장하여 딸들이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자신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심지어 딸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경우에나 훌륭한 신랑감과 결혼하는 경우에, 어머니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딸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게 저자 우에노의 도발적인 분석.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딸들은 이전의 '[[출가외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서 점차 부모의 노년을 책임져 줄 소중한 자녀의 이미지로 변해가고 있으며, 사회적 활동에 더하여 딸들이 도맡아야 할 [[돌봄노동]]은 증가 추세에 있다.[*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하는 것만큼 [[가사노동]]과 전통적 역할이 충분히 차감되지 않았다는 "이중노동의 문제" 는, 국내에서도 [[정희진]] 씨가 강조했던 바 있다. 양국의 사회상을 비교하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난맥상 속에서 일부 어머니들은 "이 나이에 딸의 신세를 지는 내 팔자도 참..." 이라고 말하여 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특히 다지마 요코(田嶋陽子)의 분석에 따르면, [[가정폭력]]이 벌어질 때 딸들은 어머니의 편을 들어서 가정 내 약자의 편을 [[대물림]]하기보다는 아버지의 폭력적 언어를 내면화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선택한다. '''[[여성혐오|여성들의 자기혐오]]는 가족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근대적 가치가 일본 사회에 빌트인되면서 가능해졌다.''' 가족 내 여성들을 자기혐오에 빠지게 만드는 원인은 결국 그 가족 내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기원한다. 즉 내 자신이 '한 남성의 아내' 라면, 혹은 '아버지의 딸' 이라면, 결국 아내답게 혹은 딸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적 압력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무력한 자기 자신에게 불만스러워하면서도 그런 자신을 한편으로는 자책하는 데 머무른다. 그러나 저자는 '''여성들이 아버지됨, 어머니됨, 아들됨, 딸됨에 대한 통념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오늘날 자명한 것으로 여겨지는 가족 관련 가치관들과 역할 규범들, 성애에 대한 상식들이 실상은 '''근대 들어 인위적으로 계몽운동을 통해 전파되고 홍보된 결과물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당장 가정폭력만 해도 "당신을 사랑해서 때렸다" 는 말은 전근대인들이 볼 때 얼토당토않은 헛소리(…)이며, 마찬가지 맥락에서 그 당시 자녀들도 "[[사랑의 매|너 잘 되라고 때린 거다]]" 의 합리화의 말 자체를 낯설게 느낄 것이고, 그 속에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사랑의 마음을 찾으려 들지도 않았을 거라는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